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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4편

Views : 1,141 2015-03-02 01:21
자유게시판 1270295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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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을 청하려고 뒤치락거렸지만 좀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우리가 출발한때로 부터 벌써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한잠도 잘 수가 없었다. 온몸에 피곤이 밀려 왔지만 잠들 수 없었고 지나온 나날들이 생시(마치 눈앞에 현실이 펼쳐지는 것처럼)처럼 지나간다.

기쁘고 즐거운 날보다 외롭고 쓸쓸한, 그리고 무엇에 의하여서인가 늘 불안한 것 같은 나날 속에 그래도 희망의 빛이 있었던 나날들이였다.

하나원을 나와 처음으로 만난 포항북부교회의 한동식, 조연주 집사님 부부, 그들은 정말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였으며 자신들의 신실함과 겸손, 그리고 사랑으로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였다.

거의 강박에 가까운 집념으로 외로운 길을 갈 때도 늘 저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선교사 부부, 중국에서 우리 탈북자들을 자기의 자식마냥 아끼고 사랑하여 주시며 탈북자들을 위하여 그 얼마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신 B선교사님,

자신이 양육한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도 신앙을 지키도록 자심하게 보살펴주시고 오늘은 탈북청년의 어머니가 되여 내가 어머니 노릇을 할 수 있겠는지 늘 근심하신다.

내가 중국에 있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여 밥 먹었느냐? 어디에 있느냐? 물어보고 가까운 곳에 있으면 빨리 와서 자신이 밥을 하겠으니 밥을 먹으란다. 혹 그럴 경황이 아니면 자신이 밥을 해놓고 가겠으니 와서 먹고 가란다.

탈북자들을 만나면 항상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주고 우리끼리 시내에서 만나면 하남시장안에서 가장 싸구려 음식을 골라 먹는다.

내가 미처 피난처를 마련하지 못하면 방을 빌려주고 내가 탈북자들에게 성경공부를 시켜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모든 일을 뒤로하고 어머니 마냥 재미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준다.

지금까지 내가 탈출시킨 탈북자의 거의 반수는 B선교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셨으며 우리가 3국을 향하여 출발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그 분이 오셔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반드시 승리할 것을 약속하는 기도를 하여 주신다.

나는 세월이 흐르면서 기도의 위력을 느껴가고 있었다. 하나원에 들어온 탈북자들이 가끔은 저에게 전화로 이야기 하는 것이 "선생님, 그때 그 선교사님이 기도하여 주신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옥미는 국경선을 넘을 때 선교사님의 기도를 생각하면서 그에 힘을 얻어 걸었다고 합니다."

옥미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만옥아주머니. 최부부 그들은 선교사님이 기도하여 주신데 힘입어 우리는 반드시 성공한다고 믿고 떠낫고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분을 스승처럼, 누나처럼, 그리고 탈북자들에 대한 사랑을 보면서 내가 하나님과의 연결의 끈을 놓지 못하였다고 생각한다.

나를 동갑친구라고 부르는 사장님, 그 많은 연세에도 중국에서 탈북자 지원활동을 하신다. 어느 곳에 탈북자 있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찾아다니다 싶이 하고 있으며 탈북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줄때는 모든 것을 잊고 얼마나 정열적으로 하는지 나도 의심스러울 정도다.

종이에 이러저러한 그림들을 잔득 그려가면서 재미있게 설명하여 주고 탈북자 편의라면 내가 부러울 정도로 보살펴 주신다.

내가 처음 사장님을 만난 것은 지난해 1월 중순 경이였다. 나는 연길에 도착하여 전화로 “사장님, 저는 아무개의 소개로 사장님을 알게 된 XXX입니다. 저는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다”고 전화 드리니 당장에 오시겠단다.

나는 그 먼 길을 지금 오시자면 힘이 든다고 말씀드렸다. 나도 연길까지 오는데 열차에 움직일 틈이 없이 사람이 빼곡히 들어차서 온밤을 서서 왔던 것이다. 그런데 연세가 많으신 사장님이 자신은 괜찮다고 하면서 오늘 밤중으로 떠나겠으니 내일 낮에 꼭 만나잔다.

나는 너무 빨리 사장님께 나의 소식을 알려드려 사장님께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마안한 마음이 들어 하루 종일 죄의식 같은 것이 드는 것이었다. 다음날 오전, 사장님이 나에게 전화로 몇 시에 모장소에서 만나자고 하시기에 나는 미리 그곳에 가서 목소리를 통하여 사장님의 얼굴형과 체형을 상상하여 보았지만 비슷한 사람은 없기에 다시 사장님께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고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사장님은 어떤 옷을 입고 계십니까? 고 문의 하니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거기서 제일 잘생긴 미남자 찾으면 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 우리는 순조롭게 만날 수가 있었으며 구면친구처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다시 장소를 옮기여 당장 하여야 할 일들을 논의 하였다. 시간상 관계로 길게 이야기 나눌 수가 없었고 나는 곧 B선교사님에 대하여 소개의 말씀을 드리고 B선교사님과 함께 자리를 하고 두 분이 일하여 온 과정을 간단히 말씀들을 나누시었다.

나와 B선교사님은 곧 훈춘으로 가야하기에 작별인사를 드리니 사장님이 자신이 모셔다 드리겠다고 하면서 승용차로 훈춘까지 우리를 태워주시고 우리가 일을 다 볼 때까지 오랜 시간 밖에서 기다리시다 우리를 태우고 연길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시였다.

사장님은 자신을 북한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결단성 있고 현실적 이였으며, 목표지향적인 명랑하신 분 이시였다. 사장님은 헤어지면서 앞으로 모지역을 통과할 때는 무조건 자신에게 전화를 하여라, 그러면 자신이 열차 침대를 끊어 주고, 우리 동갑친구 하잔다.

한번은 먼 길을 갈 것을 생각하니 아찔한 생각이 들어 사장님께 차표를 예악하여 달라고 부탁을 하니 침대표를 끊어놓고 나를 기다리였으며 내가 차표 값을 드리자 친구가 무슨 짓인가 나무란다.

우리는 간단히 차를 마실 때에도 사장님은 현실분석과 일하는 방식을 성경적으로 분석하면서도 아주 재미있게 말씀하여 주신다. 특히 생명과 영혼에 대하여서는 알기 쉽고 편안한 이야기 방식으로 말씀하신다.

그 후에는 내가 사장님께 수고를 끼쳐드리는 것이 미안하여 차표부탁을 하지 않았더니 얼마나 섭섭하게 말씀하시는지 제가 앞으로는 꼭 지나다니면서 들렷다가 가겠습니다, 라고 약속을 하였다.

그분이 양육한 청년들이 몽고에서 직접 전화를 하니 정말 전화음성으로 들리는 그분의 목소리가 아마 하늘땅을 다 얻어도 그렇게 기뻐할 것 같지를 않았다. 이후에 제가 알게 된 것은 그분은 국가 원수를 만나기 보다 더 어려운 훌륭하신 분이시고 큰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신실하신 좋은 분들을 만나 여러 가지로 그물망을 만들어서 우리가 서로 협력하여 더 효율적이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일하는 특성상 악당도 만나고 천사도 만나지만 하나님이 보내주신 참 신실하신 분들을 만나 힘든 줄 모르고 내가 받는 사랑을 알게 되였으며 삶의 가치를 느끼며 더 큰 일들을 계획하고 희망의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진실한 사랑은 믿음을 낳고 능력 이였으며 실천이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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